유자차행진곡
소현언니 생일점심, Keiko 생파, 김치담구기 클래스, 30K 워킹 본문
요 며칠 일기를 못썼다. 절대 바빠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머리속이 혼자 복잡해서 그런 것 같다. 거의 날마다 아침수행 하고 있는데, 아무생각 안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어느정도는 나아져도 완벽을 기대하는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2월 28일 금요일
소현언니 생일이라서 진영언니, 혜진언니랑 다운타운 스시집에서 스시를 먹기로 했다. 내가 소현언니 차를 얻어타고 가야해서 아침일찍 언니네 집 앞으로 갔다. 평일이라 언니 딸이 학교 가는 날이라, 우연하게도 학부모로서의 소현언니를 보게 됐다. 아이를 이탈리아 초등학교에 드랍오프하고, 돌아올때는 픽업을 했다. 요즘 이탈리아는 Carne Vale 기간이라 애들이 코스튬을 입거나/분장을 하거나/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가는 행사를 한단다. 언니 딸은 한복을 입었다. 안그래도 어여쁜 아이인데 머리까지 댕기를 땋아서, 무슨 잡지 속 아동모델을 보는 줄 알았다. 학교 앞에 모여든 학부모들을 보는데, 어찌나 내 조카 예나 생각이 나던지... 예나도 어렸을 때 참 예뻤었는데, 내가 영국/덴마크에 놀러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챙겨준 게 없구나, 조카들이 보고싶어지고 마음이 자꾸 울컥했다. 이걸 쓰는 지금도 미안한 맘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조만간 맛있는 것 좀 주문해 줘야지.
다운타운은 좋았다. 혜진언니 없이 나머지 셋끼리 일찍 만나게 되는 바람에 언니가 화가 났는데, 나같으면 속으로 삐지고 오래갔을 것을 혜진언니가 당당하게 표현해서 다행히 A/S 할 기회를 얻게 됐다. 써싸에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기분 나쁜 것도 표현하기가 어렵다. 모국어를 쓰니 편하기도 하지만 감정이 순화되지 않고 날것으로 드러나는게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나폴리 바닷가 앞에서 먹었던 Graffa 도 맛있었고, 날씨도 넘 좋았다. 스시집도 좋았지만 내가 거주하는 곳이 죄다 빌라촌이라 그런지 자연이 고픈 나에게는 바닷가 앞 카페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운전 잘해서 여기저기 잘 다니는 언니들이 참 부럽다. 혜진언니가 다음에 운전해서 와보라고 했는데, 꼭 할 수 있었음 좋겠다.
3월 2일 일요일
Keiko 서프라이즈 생파날이었다. 1 주 전에 우리집에서 김치만들기를 하고 이미 몇몇의 친구와 생축을 해줘서, 추가로 생축하게 될 줄은 몰랐다. Troy 와 Sibila 의 주최로 시작하게 된건데, 원년멤버라고 해서 신규멤버들과 형평성에 차이가 나면 안된다 생각해서, 준비하는 기간 내내 파티를 간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밥만 같이 먹는 식으로 간결하게 하고 싶었는데, 미국인들과 함께 준비하다 보니 케익과 카드, Gift Money 가 붙었다. 나와 Miki 가 Keiko와 남편의 점심을 부담했는데, 결과는 꽤 괜찮게 끝났다. 다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Clifford 를 좀 경계하다 보니 작은 마찰이 있었고, 당일날 비용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식당과 계산법이 틀려 중간에서 많이 당황했다. (예고없이 일찍 자리 뜬 Sibila 를 원망하며ㅠㅠ)
이런 파티주최를 해본 경험이 없으니 그룹챗을 이끌고 장소, 시간선정, 사람 초대, 비용 조사, 비용 나누는 법 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받는게 당연했다. 채팅방에서 영어로 언쟁하는 게 쉽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장소 선정하는게 어려웠다. 그리고 아무런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유령참가자들의 침묵도 견디기 어렵다. 워낙 칭찬만 들으려 하고 욕먹기 죽도록 싫어하는 나로서는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막상 끝나고 나니 뿌듯함 + 해방감이 어마어마 했다. 물론 도움도 많이 받았다. Troy 가 케익과 카드, Gift Money 를 모았고, Sibila 가 비용 계산, 선물 준비법 등 디테일한 사항에 대해 계속 조언을 해주고, 답장도 빨리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Keiko 가 제시간에 나타나주고, 기분 좋아해줘서 감사한 일이었다.
이 일이 끝나니 Sibila 가 본인이 PCS 하고 나면 나더러 피클볼 챗을 맡아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음 솔까 아직까지는 내키지 않는다. 나도 그냥 팔로워 하고 싶지 리더는 하기 싫다. 하지만 피클볼 챗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슨 일을 해야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물어보긴 했다.
3월 4일 화요일
김치 담구기 수업 2차. 지난번에 참여 못했다고 아쉬워했던 Michelle 과, 다시한번 수강하고 싶다는 Rie 를 초청했다. 그러나 나는 이 수업을 Chie 를 위해 열었다. 첫만남부터 친해지고 싶었지만 Lago 에서 자녀 넷을 케어하느라 너무 바쁜 그녀! 제대로 만난적이 별로 없는데 조만간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처음에 나한테 김치 좋아한다고 얘기하길래 김치를 조금 주었더니 너무 고맙다고 돈을 지불하려고 했다 ㅋㅋ 그리고 집에다가 모든 재료를 구비해놓을테니 김치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길래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를 줄테니 김치로 만들어 달라고 했던 다른 누군가에 비하면 정말...^^) 그리고 Chie 아이들이 나한테 내 김치가 맛있었다고 얘기하며 천사미소를 보내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날도 Chie 는 애들 픽업때문에 조금 일찍 떠나야 했지만, 열정적으로 나의 수업을 돕고 경청해주었다. Rie와 Michelle 도 시간에 쫒겨 정신없는 나를 이해해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점심으로 준비한 수육이 비계가 너무 많아 느끼했지만...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3월 5일 수요일
오늘 열린 <30K 러닝/조깅/워킹 대회>. 지금도 무슨 이벤트인지 잘 모르겠는데... 대충 설명하자면 JFC 에서 열린거고, 해외 어딘가에서 군인들이 대포들고 이동하기 대회(?)가 있는데, 그 조직의 대회 참가비를 모금하기 위해 열린 행사다. 남편의 유닛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 대회에 참가하면 하루 근무를 안해도 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ㅎㅎㅎ
30K 를 뛰면 메달과 Peroni 맥주를 주고, 중간중간 바나나와 물, 오렌지같은 간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JFC 둘레 + 트랙을 총 10번 돌면 완수한 것으로 본다. (알아서 양심적으로 완수해야 됨. 모금을 위한 행사라 기준이 널널~)
며칠 전 남편이 Ruck March (군장비 매고 행군하는 것) 행사가 있다고 하는데 같이 하고 싶냐고, 나는 아무것도 안매도 된단다. 그래서 '그럼 쉽겠네, 나는 무거운거 없으니까 오빠보다 빠를듯 ㅋ' 했더니 남편이 알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다음날, 20불을 결제했다고, 무조건 참여해야한다고 해서 투닥거렸다. '내가 쉬울것 같다고 했지, 언제 참가한다고 했냐', '돈 들어간다고 왜 말을 안했냐' 등등... 그렇지만 올해 나폴리 마라톤 행사를 건너뛴 것이 내심 아쉽기도 하고 (작년에 나는 2K 만 하는 Family Run 에 참여했었다. 부담없으니 소풍간 것 마냥 너무 좋았던 기억), 오랜만에 장거리 걷기를 하고 싶기도 해서 결국 참가하기로 했다. 마침 이번 대회에 군장비를 안매도 된다는 소식도 들렸다. 군인들은 이런 달리기나 걷기 행사가 엄청 흔한데, 가족들도 때때로 초청된다. 막상 할 때는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좋아져서 은근히 좋아하는 편!
그런데 당일날, 아뿔싸, 3바퀴까지는 너무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햇빛 샤워도 하고, 남편이랑 오랜시간을 산책(?)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JFC 외곽을 따라 걷는데, 주변 농장들도 보이고, 염소, 돼지, 닭, 당나귀들이 풀뜯어먹고 있는 것도 보여서, 체험활동 온 것처럼 신났다. 중간에 제공되는 오렌지는 또 얼마나 달고 향긋하던지..
그런데 4바퀴 째부터 다리가 점점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관절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통증이 느껴지고, 걸음 속도가 계속 떨어졌다. 재잘댈 기운이 사라지고, 잠깐 쉬고 싶은데 남편은 쉬고 나서 더 아프다고, 한시도 못쉬게 하고 ㅠㅠ 다리가 얼마나 아팠던지 중간중간은 달려야 했다. (같은 자세로 걸으니까 더 아픈것 같아서 다른 근육을 쓰려고 달렸다)
어쩐지 대회 전날에 남편이 했던 말들이 수상했다. 자꾸 푹 쉬라고 하고, 밥을 잘 먹어두라고 하고, 물을 충분히 마시라고 하고, 대회 다음날 어디 가는지 물어보고 (다리가 마비될테니 회복시간이 있는지 체크했던 거였음), 전날밤 대회에 가져갈 바나나를 사오자는 둥, 수분섭취에 좋은 오이를 사자는 둥, 옷을 너무 두껍게 입지 말라는 둥, 마사지 건을 충전해봤다는 둥ㅋㅋㅋㅋㅋㅋ
가벼운 마음으로 대회에 참여했다가, 약 7시부터 4시간 20분 정도 하염없이 걸었던 나는 결국 7인가 8바퀴 째 쯤에서 걷기를 중단했다. 남편은 나머지를 완수하고 싶었지만 나 때문에 계속 걸었기에 시간이 지체됐고, 차를 태워줘야 할 후임들이 먼저 끝나고 앉아 계속 기다리고 있어서 혼자서 한 바퀴를 더 뛰고 돌아왔다. 나는 완수도 못했고 메달도 예쁜 쓰레기 취급하는지라 그냥 차에 가서 기다렸는데, 남편은 자랑스럽게 메달을 걸고 돌아와서는, 나더러 '20달러 냈는데 왜 메달을 안받아왔냐' 고 답답해 했다. 쏘오리 남편 근데 난 후회되지 않아...................ㅋㅋ
운동도 적당히 해야한다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날이었다. 초반에는 상쾌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통증과 짜증만 올라온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계속 졸린다 ㅋㅋㅋㅋㅋㅋ
남편이 요즘 속이 안좋아 밥을 제대로 못먹었는데, 친구들과 스시집에 연속 두번 간 나를 부러워하며 어제부터 스시스시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후임들 부대에 떨궈주고 점심 먹으러 곧장 스시뷔페로 갔는데 남편은 서너 접시를 먹더니 속이 안좋다며 집에 가자고 한다 ㅠㅋㅋ 소화도 안되는 몸에 + 과도한 운동을 하니 음식이 들어갈 리가.. 나도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과식을 했다간 체할 것 같아서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인당 19 유로를 내고 간 뷔페집인데, 허탈했지만 몸의 상태를 인정해야만 했다.
집에 와서 남편은 샤워하고 자고, 나는 샤워도 안하고 쓰러져 잤다 ㅋ 그리고 둘다 느즈막하게 일어나 티비 보면서 마사지건을 했다. 남편은 속 안좋아서 저녁 패스, 나는 좀전에 먹었다.
걷고, 자고, 먹고... 동물같은 원시적인 오늘 하루가 좋았다. 인생 뭐있나~
남편은 쉬는 날엔 거의 집돌이 모드라, 같이 산책하러 끌어내기가 진짜 어렵다. 그런데 오늘은 다리를 희생하긴 했지만 평소에 염원했던 것을 이뤘던 날이다.
감사합니다 남편,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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