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차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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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밀린 일기는 쓰기 싫다 + 많은 일이 있었던 근황

유자차행진곡 2021. 4. 14. 12:20

지난 일기 후 겨우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4월 3일, 4일 주말은 근처 Albany 로 여행을 갔다. 이전 근무지의 원어민 선생님 고향이기도 한데 자동차로 거진 4시간에 가깝게 운전해서 갔다왔다. (중간 지점이었던 Utica 에서 맛있는 베이글도 먹었다!) 남편 카드 덕에 숙박비도 공제받고 큰 돈은 쓰지 않았지만 르네상스 호텔은 쪼끔 그랬다 ㅎㅎ 실험적인 인테리어는 그렇다 쳐도 직원도 별로 없고 서비스가 좀.......  그래도 위치는 좋아서 The egg, Museum, City Hall 같은 주요 건물들을 돌아보기에 무척 편리했다. 부대랑 워터타운만 돌아다니다가 도시를 접하니 너무 좋았다.ㅎㅎ 나도 나중에 이런데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이라서 눈여겨보았다. 다만 남편은 미국 도시운전이 익숙하지 않아서 '나 정말 시골쥐됐나봐' 이러면서 당황해한다. 여행 첫날 날씨가 쌀쌀하기도 했지만 장시간 초행길 운전을 해서 그런지 남편은 숙소에서 일찍이 뻗어버렸다 ㅎㅎㅎ 다음날은 Orchard Creek Golf Club 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백립을 먹었다. 나는 보통이었는데 남편이 맛있어해서 좋았다.

 

4월 5일

남편 DONSA. 오전에 PX에 새로 생긴 Bun-D 라는 음식점 구인란을 보고 페이스북으로 지원을 했다. 그후 남편이랑 점심메뉴를 얘기하다가 Bun-D 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나 혼자 운전해서 가는 PX였다. 자동차로 10분밖에 안되지만 나에겐 아주 장엄한 순간이었다. 무사 도착해서 음식을 주문해 받고, 이력서도 제출했다. 그랬더니 금방 청신호가 온다. 매니저가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자는 것! 예쓰! 그러나 스탭에 비해 손님들이 많아서 매니저는 일하느라 바쁘고, 나는 계속 기다렸다... 스무디 녹고 밥 식을까봐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직행. 무사히 운전을 마치고 garage에 파킹까지 완료하고 나니 얼마나 기쁜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는 다시한번 PX 찾아가 Bun-D 문 닫고나서 인터뷰를 보고, 그 자리에서 채용되었다. 주말 하루도 반납해야 하고 근무시간이 거의 12시간이 돼서 좀 긴장했지만 뭐 해보기로 했다. 나홀로 운전도 성공하고 취업까지 성공해 의미있는 날이었다.

 

 

4월 6일~4월 10일

첫날 12시간 푸드코트 알바는 지옥이었다. 7 to 7 이라니 태어나서 그렇게 장시간 서서 일해본 적이 없다. 피크타임에 군인들 너무 많고..... 스무디 메뉴 멘붕에다가 컵에 담을때 손목아프고...... 설거지 허리 나갈거 같다. 제일 힘든게 배고픔이었다. 2시가 훌쩍 넘어서 겨우 20분 breaktime 이었는데 힘드니까 돈주고 산 샌드위치가 목구멍으로 안넘어간다.ㅠㅠ Brianna 랑 얘기하는 것도 힘들어서 집중이 안됐다. 한국만 노동강도가 센 줄 알았는데 미국애들은 더 지독하잖아? 아니 그래도 여긴 미국인데 이정도로 사람을 혹사시키면 신고감 아닌가?? 허리, 발바닥을 중심으로 온몸이 쑤셨고 이걸 매일 하기엔 내 체력이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퇴근하고 남편과 엄마랑 얘기해보고 매니저에게 도저히 못할것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몸살로 못일어나지 않을까 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았다. 집에서 가깝고 시급이 15불로 세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파트타임으로 해보라는 아이디어를 줬다. 역시 언닌 천재다. 다음날 유니폼 돌려주러 가는길에 파트타임 가능하냐고 했더니 스탭이 부족한 Bun-D도 반갑게 수락한다. 오예오예. 집에 와서 함께 취업을 고민했던 민선이에게 취업사실을 알리고 일자리를 추천해줬다. 좋은 기회라 추천하면서 스스로 뿌듯했다. 취업하니 생각나는 사람은 미선언니였다. 잘 지내는지 안부 문자를 보냈고, 밝은 목소리의 언니와 전화통화를 잠깐 했다.

 

다음날 민선이는 이력서 들고왔고 역시 그자리에서 채용되었다 ㅎㅎ 한국인의 파워를 보여주자 민선아! 나는 이날 약속했던 6시간 파트타임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chopper 에 엄지손톱을 다쳤는데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다. Antiseptic, finger condom 이라는 용어를 알게되었다.ㅎㅎ 첫날의 반절만 했는데 발바닥이 어찌나 아픈지... 걸어서 집에 오는 30분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첫날보다 나았기에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했다.

 

다음날 금요일 출근해서 민선이와 함께 일했다. 민선이는 풀타임 근무를 했다. 첫날 토나올정도로 힘들었어서 민선이가 걱정됐지만 그게 본인이 원하는거였고 필라테스 강사라 그런지 나보다는 체력이 좋은 것 같았다. 이날 음식 진열대를 맡았는데 뭐가 뭔지 몰라 어리버리하게 일했다. 금요일이라 오전근무만 한 남편이 나를 픽업해주었다. 남편이 짱이다. 게다가 모처럼 모나미에 가서 영자언니를 만나고 왔다고 한다. 박카스 한박스를 들려주다니 언니한테 너무 고마웠다. 언니한테 감사문자하다가 통화하게 됐는데 너무 즐거웠다. 언니는 참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다. 조만간 찾아가고 싶다. 

 

토요일에 Daisha 가 아팠다. 거기 있는 직원들 안아픈게 이상할 정도라 너무 딱했다. 맥아리가 하나도 없어서 내가 대신 매니저한테 쟤 좀 보내주라고 하고 싶은데 파트타임만 하는 주제에 월권을 행사하는 것 같아 도와주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Daisha 는 일찍 퇴근했고, 직원 부족의 결과는 금새 찾아왔다. Keana 가 추가 근무를 요청했는데 내키지 않았다. 할까말까 망설이는 도중 피크타임이 왔고, 주말에는 스무디 주문이 미친듯이 계속 와서 정신이 없었다. 스무디 점도 조절이 안되고 뚜껑이 징하게 안닫혀서 좌절감을 느꼈다. 주문은 밀려오는데 스무디가 컵밖으로 흘러나오면 정말 짜증난다. 잘하려고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속상했다. 어느새 오버타임이 됐지만 남편도 기다리고 있고 해서 그냥 퇴근했다. 차에서 오래 기다린 남편이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미선언니한테 연락이 왔다며 짜장소스를 받으러 가야 한단다. 그래서 내가 운전해서 언니집에 갔다. 조기, 백설기, 멸치볶음, 김치만두, 된장, 고추장, 모찌, 짜장소스, 면, 신라면 한박스....  언니는 이 모든것들을 한보따리에 넣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한테 너무 고마웠다. 한두번도 아니고 이게 몇번째냐! 코로나 백신도 맞고 이제는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언니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언니 건강하시기만 하면 돼요. 언니 음식 없어도 잘 먹고 산다고 걱정말라고 하면서 울엄마가 챙겨준 멸치랑 시댁에서 챙겨준 미역을 건네드렸다. 그것마저 안가지고 갔으면 민망했을 것 같다. 언니한테 이제 운전도 하고 일도 한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언니도 좋아한다. 미선언니와 영자언니한테는 내가 정말 잘하고 싶다. 푸드코트 알바하면서 체력이 고갈되고 끼니 차리는게 힘들었는데 맛깔스럽게 완성된 음식을 받으니 에너지가 난다.

 

일요일이다. 작성하기는 w-4가 까다로웠는데 i-9 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내 소셜시큐리티카드에 있는 working only 표시가 취업제한을 뜻하는 말인지 몰랐다. 인터넷을 뒤져본 다음 매니저 Keana 에게 연락을 했고, 회계담당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제 status 가 일하면 안되는건가요? 인터넷을 보니 거의 확실한 것 같았는데 회계담당자도 그렇게 되면 그동안 일한 돈을 못줄수도 있다고 한다. 암담하면서도 당장은 몸이 편할 생각에 좋기도 했다. 

월요일이다. Bun-D 회계담당자는 내가 취업불가능한 status 에 있다면서, work permit 이 나오면 돈도 그때 챙겨줄 수 있다고 한다. 자세히 알지 못한 내 불찰이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으나 돈 떼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괴로웠다. 그래도 이참에 한동안 구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그러면서도 계속 뭘 준비하고 있어야하나 고민이 된다. 난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백수생활을 질리게 해봐서 그런걸까?

 

4월 13일 화요일 (오늘)

무슨 일을 해야할까 계속 고민이다. 이발사? 치위생사? 지금 당장은 자원봉사라도 할까? 

머리를 식힐겸 자전거를 꺼냈다.

자전거 포스트를 쓴 후로 나는 PX에서 자전거를 구입했고, 페이스북 그룹에 요청해 air pump 가진 사람을 발견해 바퀴에 바람도 넣었다. 헬멧쓰고 집 근처 여기저기 연습하면서 오늘은 자전거 타고 내리기 방법을 유튜브로 찾아보았다. 평소에 어떻게 그렇게 쉽게들 높은 안장에 올라타고 내리는지 궁금했는데 검색하기를 어찌나 미뤘는지.. 진작 찾아볼 걸 그랬다. 오늘 연습해보니 앞으로 자전거 타기 두려움을 많이 없애줄 것 같고 더 프로페셔널하게 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부대 내 거주 밀집 지역이고 근처에 공터도 없어서 자동차를 피해가며 탔는데, 다 큰 어른이 자전거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창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서른이 넘으니 부끄러움보다 중요한게 뭔지 안다. 물론 창피함을 무시하기 쉽지 않지만 열심히 노력한 내 모습에 박수쳐주고 싶다. 짝짝짝.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잘했어 보미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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