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차행진곡
한 달 동안 '108배 + 어리석음 찾기 (aka.1000일 기도)' 하며 느낀 점 본문
정토회 불교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 1000일 기도.
'생각' 과 '마음' 은 별개의 것이고, 생각(의식)은 쉽게 바뀌어도 마음(무의식) 은 바꾸기 무지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가정환경에 따라 성장하면서 마음이 형성된 거라, 변화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내 모습(꼬라지)를 제대로 알려면 100일은 족히 걸리고, 그것을 개선시키는데에는 1000일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천일기도가 된 것.
1000일은 힘드니까 100일씩 나누고, 혼자서는 힘드니까 여러명이 함께 도전 --> '결사' 라고 부른다.
즉, 천일결사.
나는 불대 입학 전부터 정토회에 전화해서 이거 뭐냐고, 왜 이런거 하면서 매일 1000원씩이나(?) 보시해야 하냐고 따졌다. 천일결사라는 이름도 그렇고 돈 가져가는 것도 그렇고 딱 사이비 행위같았으니까.
그런데 호기심으로 직접 해본 한달 소감으로는.... 보시하는 돈이 아깝지 않다. 마음 편해진 정도에 비하면 말이다. 하루하루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내 힘으로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충분히 내고도 남는다.
내가 매일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5시에 시작하는 이 기도는 부처님한테 '~해달라' 고 비는게 아니다.
기도라는 용어를 왜 쓰나 할 정도로 부처님을 찾을 필요가 없다. 부처님은 쉬고 계시라고 하고, 문제를 갖고 있는 나를 들여다 본다.
지난번 마음이 불편하고 짜증나게 느껴졌을 때, 화가 났을 때,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었던 이유들을 헤아려본다...
그 마음들의 뿌리는 하나로 귀결된다.
'이게 옳은거고, 저건 틀린 것' 이라고 나 혼자 정의해놓고 내 생각을 고집했던 것
( 상대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그려놓고 왜 그림과 다르냐며 상대를 비난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마음의 착각이 나 자신과 상대 모두를 힘들게 한다. -법륜스님)
예를 들어보자면...
나의 원망: 남편이 퇴근해 집에 오면, 저녁먹고 맨날 쇼파에 드러누워 TV 켜놓고 거실에서 잠. 나도 밖에서 바빴는데 설거지 도와주기는 커녕, 이 썩으니까 방에서 들어가 자라고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안함. 그냥 쇼파서 자겠다고 고집부림. ----> 신경전으로 번지고, 나는 속터짐
[내가 며칠 전에 한 기도]
절하는 도중에도 원망하는 맘이 생겨서 짜증남... 엎드리면서도 '내가 왜 엎드려 지가 엎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듬.
그런데 몇번 절하다 보니 몸의 형태가 겸손/경건해짐 --> 마음도 약간 숙여짐. 내가 어떤 모양을 만들고 고집부렸나 생각해보게 됨 --> 내가 그린 남편의 옳은 모습은 저녁 먹고 나랑 소소한 이야기 + 설거지도 가끔 도와줌 + 양치하고 들어가서 잠
그런데 현실은: 남편은 직업상 새벽에 일어나 몸을 막 써야 하고, 수직적인 구조에서, 아랫사람들 관리하고 보살펴야 하고, 윗사람들 말에 승복해 이해 안되는 업무도 다 해야 함. 일을 잘하니 일도 많이 줌. 그런데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나약하다는 평가를 듣는 마초 세계 --> 집이 유일한 안식처. 유일한 쉬는 시간이 저녁먹고 TV보는 시간. 다른 것을 할 에너지가 없어서 TV보는게 전부임. 그마저도 오래 못보고 잠듬 ---> 피곤과 스트레스로 뇌가 계속 셧다운
남편이 원하는 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자고 싶음
---> 와이프라는 이유로 내가 타인의 수면 시간과 장소를 통제하려고 함. 동거인이라는 이유로 나와 똑같이 만드려고 함. 독재성이 보이는 나의 꼬라지 ---> 불쌍한 내 남편은 원하는데서 원하는 만큼 잘 자유도 없는 사람이구나.
남편이 하는 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계속 일만 하고. 요즘 몸이 안좋아.'
---> 사실을 사실대로 듣지 못했다. 내 피곤함만 주장하느라.
글로 쓰니 마음이 미어진다 ㅠㅠ 허튼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집만 반복하는데, 집에서까지 바가지 긁으면 어디서 쉴 수 있을까. 나는 집돌이 남편을 보고 '내가 집을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줘서 그렇다' 고 뿌듯하게 생각하면서도 이것도 해줬음 좋겠다, 저것도 해줬음 좋겠다 싶다. 즉 집에서도 일하면서 쉰다고 생각해줬음 좋겠다라는 것............. 이 모순은 뭔고...
나를 내세우다보니 남편 힘든게 안보인다. 이래서 불교에서는 나를 놓고 집착을 놓으라고 하나보다. 주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결과적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시원함,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함으로서 오는 마음의 평화 (원망이나 괴로움이 없는 상태) 가 생기니
마음이 넘 편해진다.
이런 마음 가져볼라고 그동안 살면서 별자리, 혈액형, 사주카페, 자기계발 도서, 유튜브 등을 찾아보고 헤맸는데 (종교는 싫어서 멀리함)
30대 중반 지금 발견한 이 '자기 성찰', '나의 어리석음 찾기' 가 탁월한 효과가 있는 거 같다.
애초부터 법륜스님 즉문즉설이 너무 신선하고 마음이 편해져서 불대에 입학하기도 했지만 이론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찼다. 다행히 실습 기회, 즉 천일결사가 있어서 내가 배운 것을 일상에 적용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심리가 많이 안좋았다면 정신과 상담료나 약값도 들었을 텐데 나의 경우에는 다행히 여기까진 아닌 것 같고 아침 수행만으로도 심리가 많이 안정되어졌다. 나의 의지력으로 진행하는거라 자신감도 생기고, 내 주변 사람과 더 잘지내게 되는 거 같다. 매일 1000원 보시 혹은 봉사는 전혀 아깝지 않다.
108배가 좀 무서웠는데, 태어나서 처음 한 나도 점차 익숙해진다. 아래는 변화과정.
1. 불교신자가 아니라 절 하는거 자체가 어색했음. 근데 나는 나를 개선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서 그냥 함.
2. 태어나 새뱃돈 받을때, 장례식 갈때만 절했는지라 절 자체가 어렵게 느껴짐. 내 소오중한 무릎이 망가질까봐 걱정.
3. 유튜브로 보면서 따라함. 직접 수십번 해보니 올바른 자세 + 내가 편한 자세가 나옴 (이마를 땅에 닿고 완전히 엎드려 있을 때 상체가 하체(무릎)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힘듬. 팔꿈치와 무릎 간격이 가까워지니 더 편했다)
4.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면서 해야 무릎관절에 좋다고 해서 최대한 힘을 줌. 며칠동안은 인위적으로 힘을 줘서 무릎에까지 힘을 너무 줬지만, 여러 날 거듭할 수록 적당한 힘을 주게 된다.
5. 일주일 정도 지나고.... 어느날 육교 올라가는데 무릎이 아프네????? 나 이러다 무릎수술하는거 아니야?? 단 한번도 무릎 아픈적 없었는데 괜히 시작했네??? 괜히 했어ㅠㅠ 하며 후회
6. 근데 허벅지에 느껴지는 통증이 기분좋은 통증이여서 (워낙 운동을 안하니 이런 통증이 반갑다) 좀 더 해보고 싶었음. 그리고 108배 끝나고 바로 명상할 때 땀 식는 쾌감에 서서히 중독되기 시작.
7. 스님의 <기도> 책을 읽고,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 '옳고 그름의 상을 그린 어리석음에 대한 참회' 로 다시 방향을 잡으니 더욱 성찰이 잘되고, 나의 단점들이 눈에 보임. 나를 점검하고 고치는 재미
8. 처음엔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도, 내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법사님께 질의응답을 통해 궁금한 것들을 해결하는 재미
9. 처음 108배 할 때는 땀이 마구 나고 숨이 찼는데, 지금은 끝나고도 뽀송 + 숨도 안참. 체력이 증진된 거 같음
10. 원래 걸음걸이가 느린데, 요즘 빨라졌음. 허리와 다리에 근육이 생긴 것 같고 무릎도 안아픔
11.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때도 있는데 몸이 점점 익숙해지는 중
12. 1000일동안 하는 프로젝트지만, 새벽에 일어나 나에게만 집중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좋고, 내 마음을 개선 시키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 라는 관점이 뚜렷해져서 좋음
13. 천일 이후에도 계속 할 생각임. 깨달음의 장도 다녀올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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